절약하고 아끼는 마음에 대하여

수정 2026. 04. 06. 월 02:29

주말을 바쁘게 보냈다. 오랜만에 아들이 내려왔고, 건강에 이상 신호등이 크게 켜진 딸도 왔다.

아이들이 오면 자연 먹는 음식에 신경이 간다. 가족이 모인 김에 용원 어시장에 갔다. 딸이 콕 찍어 ‘해삼이랑 멍게, 개불’을 먹고 싶다고 했다.

오피스텔에서 시험을 치고 올 딸을 아내와 아들과 함께 기다리던 중, 아내가 딸이 누굴 닮아서 해산물을 좋아하는지 심히 의아해 했다.

진해 용원 어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이십여 년 전에 갔었던 내 기억 속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인근에 높다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고 시장 일대에 현대식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용원 어시장은 온누리 상품권 결재가 되었다. 그런데 온누리 상품권 잔고가 부족해 아내가 신용카드 결재를 할 때 그냥 일반 결재가 되었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해산물과 광어회를 사는 동안, 나는 주차를 하고 온 터였다. 용원 어시장은 주차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좀 멀리, 골목길에 주차를 했다. 주차 타워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럼 미리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내가 말했다.

일요일 오후에 딸이 먼저 갔고, 저녁은 샤브샤브를 먹기로 했다. 아들이 연구실로 돌아가면 또 맨날 배달 음식만 먹을 건데, 오늘이라도 신선한 요리를 맛보게 하고 싶었다.

목요일 날 먹고 남은 샤브샤브 야채랑 국물을 미련 없이(?) 버리면서 좀 아깝긴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한 마디 했다.

어떨 때 보면, 진짜 내가 깜짝깜짝 놀랜다. 농담으로 한 말이제???

순간, 아차했다.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면 될 것을 말을 뱉은 내 잘 못이었다. 내가 먹을 거면 절대 버리지 않을 남겨진 음식이었기에. 그때 잠깐 ‘절약’과 ‘아끼다’의 어원을 생각해 보았다.

‘절약’과 ‘아끼다’의 어원

한자어 ‘절약’은 대나무의 마디를 뜻하는 마디 절(節)과 묶거나 줄이는 것을 뜻하는 맺을 약(約)을 합친 단어이다.

節(마디 절)은 본래 대나무의 ‘마디’를 의미한다. 대나무는 마디가 있어야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한하다’, ‘조절하다’, ‘예절’이라는 의미가 파생되었다. 즉, 상황에 맞게 매듭을 짓듯 조절하는 것이 절이라는 한자어에 담긴 핵심이다.

約(맺을 약)은 실로 묶는 모습에서 유래하여 ‘묶다’, ‘줄이다’, ‘검소하다’는 뜻을 가진다. 한자어 약 역시 현 단계에서 만족하고 매듭을 짓는 행위를 연상할 수 있다.

우리말 ‘아끼다’는 중세 국어인 ‘앗기다’에서 출발했다. 15세기 문헌인 <석보상절> 등에서도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앗기다’는 ‘아깝다’와 뿌리를 같이 한다. 우리말 아끼다는 소비를 줄이는 행위보다는, 대상을 귀하게 여겨 정성스럽게 다루는 마음을 나타내는 어휘이다. 국어사전 풀이는 이렇다.

  1. 물건이나 돈, 시간 따위를 함부로 쓰지 아니하다. 시간을 아끼다.
  2. 물건이나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 보살피거나 위하는 마음을 가지다.

절약하고 아끼는 마음가짐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절약하고 아끼는 마음은 그냥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이야기이다.

자전거를 타고 십리 떨어진 중학교를 다녔는데,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갈 때 유독 배가 고팠던 것 같고, 그럴 때마다 주위 논에서 양파를 캐서 먹었던 기억이 불현듯 나곤 한다. 한번은 논 주인 아저씨가 빈 속에 먹으면 속 베린다고 했던 거 같기도 하다.

또, 배고픈 밤이면 걍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던 기억도 많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병석에 있던 어머니에게 3년 내내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한 번도 사 먹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 놀란 표정을 짓던 엄마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때 내가 왜 그런 말을 병환 중이던 어머니에게 내뱉었는지 모르겠다.

한 번에 1억 원 단위로 아무렇지도 않게 매수 또는 매도 버튼을 클릭을 하고, 한참 후에 그런 나 자신을 돌아보곤 놀랄 때가 가끔 있다.

절약하고 아끼는 마음은 그런 것 같다. 어떤 경제적인 요소보다도 어떤 시절에 대한 존중, 경외감으로 그것을 잊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더 강한 것 같다.

아내나 아들, 딸은 그럴 때마다 내게 아주 핀잔을 준다. 아빠는 아이 좀 그냥 하면 돼지, 왜 안 하냐고,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적당한 핑계 거리를 못 찾아 언제나 헤맨다.

하긴, 내 유일한 소일거리인 이 블로그도 호스팅 월 500원 요금제를 쓰고 있다. 용량 압박을 느끼면서도 월 500원 추가를 못해 용량을 줄이는 방법을 극단적으로 실행하고 있긴 하다.

이러한 내 마음가짐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그 기억들은 대나무의 마디처럼 내 마음의 마디로 남아있다.

나는 지금도 그 마음을 처음부터 내게 아예 없었던 것처럼 할 순 없을 거 같다. 나마저 절약하고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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