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인 내세가설

2026. 03. 22. 일 23:44

심리학 고양이라는 심리학 채널에서 재미있는 영상을 봤다.

최고의 현자들이 수 천년에 걸쳐 깨달은 것

이 영상에서는 우리의 삶이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기 때문에 이번 생의 일에 너무 매달리고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을 건네고 있다. 그런데 이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내세를 설명하는 방법이 이제까지 본 설명 중 가장 논리적이어서 재미있다.

죽으면 그대로 끝이라는 생각의 전제는 인간은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에 불과하며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영혼 같은 것은 없다는 사고관이다. 즉 죽음은 물질적 존재인 인간의 한계인 것인데, 이 영상에서는 유물론적 아이디어로 물질의 한계를 돌파해낸다. 영상에서는 사람이 스스로를 ‘나’라고 인지하는 의식이 순전히 물질적인 현상이라고 가정할 것을 제안한다. 즉 특정한 물질들이 올바른 규칙대로 정렬되면 ‘나’라는 의식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죽는다 해도, 언젠가는 이 광활한 우주의 어딘가에서는 무작위로 움직이던 물질들이 다시 나라는 의식을 발생시키는 형태로 정렬될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그 때 우리는 다시 의식을 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우주인으로서의 삶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의 삶은 우주가 끝나지 않는 한 계속된다.

영상에서는 이렇게 영생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어떻게 우리가 지금의 삶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힘든 나날도 결국 이 생에서 우연히 받은 조건에 불과하고 앞으로 이어질 영생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던가, 앞으로 이런 일상이 반복된다 해도 일상의 행복을 소중히 여겨야한더단가, 하는 이야기다. 즉 우리는 지금같은 삶을 껍데기만 바꾸어서 (사람이 외계인이 되고, 지구가 화성이 되는 식으로) 반복하게 된다는 전제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아이디어는 단순히 일상의 영원한 반복보다는 더 재미있는 내세관을 제안하고 있다.

먼저, 의식을 발생시키는 물질의 배치가 안정적이지 않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지금 우리 인간처럼 육체가 완성되고 그 안에서 의식이 발생하는 구조가 자리잡았을 경우에는 외부의 충격에도 어느정도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육체보다 먼저 의식이 완성된다면 작은 외부적 충격에도 파괴될지도 모른다. 또, 확률적으로 의식이 발생하는 구조가 결성된다해도 지구같은 행성보다는 우주의 진공 속에서 결성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 전체의 부피를 따져보았을 때 지구같은 행성보단 그냥 빈 공간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높은 확률로 보호장치 하나 없이 우주선이나 소행성 따위가 날아다니는 우주 속에서 잠깐 자의식을 가졌다가, 곧장 외부의 충격에 의해 사라지고 만다. 찰나의 단말마와 함께 촛불이 꺼지듯 ‘나’라는 존재는 우주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나’라는 의식이 발생할 조건이 순전히 물질적이라면, 꼭 지금의 내가 죽은 다음에만 내가 발생할 필요도 없다. 지금도 전 우주 속에는 수많은 나가 명멸을 반복하며 태어났다 사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의식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자신의 존재를 전할 입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걸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 우주에 도달했는지 되짚어보자. 우리는 오직 물질로만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려 했다. 그러자 무엇에서든 ‘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고, 결국 우리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산품들과 영문모를 돌연변이들의 집합소가 되어버렸다.

온 우주를 가득 채운 채 의식파인지 뭔지 모를 것을 뿜어내며 필사적으로 ‘나’를 자각하려는 존재들…한 마디로 징그러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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